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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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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89.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구약성서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을 든다면, 유다에서 벧엘로 예언하러 온 익명의 선지자를 거짓으로 속여서 죽게 만든 벧엘의 늙은 예언자(왕상13:11-32), 아모스에게 “네 나라에 가서 예언으로 밥이나 벌어먹고 살라”고 비난했던 아마샤(암7:10-17), 예레미야와 대결하면서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해이하게 만들었던 하나냐(렘28:1-17)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한편 구약성서에는 참 예언자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구별하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예언자들의 삶의 자리를 기준으로 구별한다. 즉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궁중에서 예언하는 궁중 예언자, 성전에서 예언하는 성전 예언자, 그리고 개인의 삶을 누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하는 개인 예언자가 그들이다. 대체로 궁중에서 왕의 참모 역할을 하는 궁중 예언자와 성전에서 제사장의 협력자였던 성전 예언자 그룹에서 거짓 예언자들이 많았던 반면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개인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소신껏 예언한 참 예언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전 예언자로 활동했던 하박국이나 학개는 참 예언자들이었으며, 또한 궁중에서 활동했던 이사야도 참 예언자였기 때문에 이 구분은 정확하지 않다.
  둘째의 기준은 신명기 18장 22절이 제시하고 있다.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말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언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언자의 메시지가 역사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면 참 예언자요,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짓 예언자라는 말이다. 이것이 신명기 역사가의 확고한 신학이다. 결과적으로 아모스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성취되었다는 것이고, 아마샤나 하나냐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참 예언자인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이 발발하자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앗시리아를 의지하지 말 것을 경고했지만, 전쟁은 이사야의 경고대로 되지 않았다(사7-8장). 이 예언의 실패로 이사야는 한 동안 예언자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물러나 있었다(사8:16-18). 이것도 참과 거짓을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은 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하는 세 번째 기준은 이스라엘 역사현장과 그 현장에서 선포되었던 메시지에서 찾는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는 공통적으로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 40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의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차이점은 거짓 예언자들은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범죄행위를 하더라도 그들의 삶과 국가의 체제는 붕괴되지 않고 보존된다고 선포한데 비해, 참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그들을 깨뜨리고 파괴시킨다고 선포했다. 그래서 새로운 이스라엘, 즉 변화된 이스라엘로 재창조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무조건 심판을 통해서 파괴시키는 분이 아니라, 새 이스라엘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파괴시킨다는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의 차이가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를 구별 짓는다고 구약성서는 전하고 있다. 
  이 구별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참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준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는 않는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죄악된 모습으로 변한 그리스도인들을 깨뜨리고 파괴해서 새로운 인간,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신다. 깨지는 순간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이것은 새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창조의 고통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깨지고 파괴되는 창조적인 고통 속에서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