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예레미야와 하나냐, 그 숙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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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91. 예레미야와 하나냐, 그 숙명의 대결 유다 왕국의 말기에 활동했던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숙명적인 대결에 관한 이야기가 예레미야 27-28장에 소개되어 있다. 두 사람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놓고 서로 반대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즉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반면,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치실 것이기 때문에 항복할 필요가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보면 분명 한 사람은 참 예언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거짓 예언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가 참예언자이고, 누가 거짓 예언자인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 왕을 섬기는 나라와 백성들은 그 땅에서 안전하게 정착해서 살 것이라고 선포한다(27:11). 그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에게도 야웨의 말씀을 전하면서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섬기는 것이 이스라엘의 안전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하나냐는 “야웨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치실 것이기 때문에 2년 안에 먼저 간 포로민들이 다 돌아 올 것이기 때문에 항복할 필요가 없다”며 예레미야를 공격하고 있다(렘28:11). 반면 예레미야는 “야웨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멍에를 만들었느니라 만군의 야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렘28:13-14)고 반박하고 있다. 동시에 “하나냐는 금년 안에 죽을 것이라”(렘28:17)고 예언하니 그대로 되었다. 동시대 예언자인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사상과 신학적인 관점이 어떻게 극과 극일까? 구약신학자 윌슨(Wilson)은 하나냐는 예루살렘 중심부의 예언자로서 다윗왕조 신학을 토대로 체제옹호적인 발언을 한 셈이고, 예레미야는 변두리 예언자로서 체제비판적이고 붕괴적인 발언을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갈등과 대립은 이념논쟁이기 보다는 사회계층간의 대립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냐는 예루살렘 중심의 지배계층을 대표하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사회체제의 붕괴와 전통적인 야웨신앙의 기강을 뒤흔드는 위험분자로 간주하게 되었다.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거짓 예언자라며 그의 예언신탁은 정통성이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야웨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알게 하는도다”(렘28:15)라고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참 신의 존재”를 놓고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대결했던 갈멜산을 연상시키는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결에서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승자는 참선지자요, 패자는 당연히 거짓 선지자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이 해답은 예레미야서가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 역사는 예레미야의 선포대로 진행되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망해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고, 하나냐도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 해에 죽었다. 물론 사람은 언제나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성서기자는 금년 안에 죽는다는 예언대로 하나냐가 죽었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참 예언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권력의 편에 서서 부와 명예를 쫓아가게 되면 하나님 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 따라서 진실한 예언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세속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고 서민들의 편에 서게 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진실한 예언자가 될 수 있다. 두 예언자는 오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좋아하는 말을 하게 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말을 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결단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