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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풍요 속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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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86. 풍요 속의 빈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전기 예언자와 문서 예언자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 예언자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성서가 없는 자를 가리키며, 문서 예언자란 자신의 이름으로된 성서를 가지고 있는 예언자들이다. 문서 예언자들의 시대는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시작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예언활동을 했던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했던 이사야와 미가가 그 대표적이다. 이들 중에서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성서를 가졌던 예언자가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이다.
  아모스 7장에는 북왕국의 벧엘에서 남왕국 출신으로 북왕국에서 예언했던 아모스와 북왕국 출신의 예언자 아마샤 간에 예언자적인 논쟁장면을 보도하고 있다. 이 논쟁에서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너는 너희 나라인 남유다에 가서 예언하고 밥이나 먹어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아모스는 “나는 밥을 벌어 먹기 위해 예언자 노릇은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논쟁을 보면, 아모스는 경제적으로 최소한 중산층 이상에 속한 사람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구약신학자 아이스펠트(Eissfeldt)는 “아모스는 드고아에 자신의 농장과 양떼를 소유하고 있는 재산가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모스서를 보면 그는 고대 근동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두루 섭렵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즉 아모스는 단순히 드고아에서 농사나 짓고 가축을 기르는 농부가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요, 또한 지식층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안정된 삶을 영위하던 아모스가 왜 삭풍이 부는 광야와 같은 북왕국에 가서 예언활동을 했을까? 여기에는 북왕국의 국가적인 현실을 들 수 있다. 특히 종교적으로 참 예언자가 북왕국에는 없었기 때문에 남왕국 출신의 아모스를 하나님은 북으로 보내셨던 것이다. 물론 당시 북왕국에는 아마샤를 비롯한 여러 명의 예언자가 있었다. 그러나 아마샤는 참 예언자가 아니라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전형적인 거짓 예언자였다.
  아모스가 예언했을 당시 북왕국의 왕은 여로보암 2세였다. 그는 유능한 군대 장관 출신으로 그의 40년 통치기간은 북왕국 역사에서 가장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며 대외적으로도 국력을 과시했던 시기였다. 구약신학자 마르틴 노트(M, Noth)는 여로보암 2세가 다윗-솔로몬 시대의 국토를 회복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이것이 북왕국의 외형적인 모습이었다면, 그 배후에는 더 큰 고통이 있었다. 즉 빈부격차가 역사상 가장 컷던 시대였다. 역설적이지만 이때만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빚을 지고 몸을 파는 사람들이 생겨난 시대도 일찍이 없었다. 가난한 백성들의 본노와 한이 끝없이 쌓여가던 시기이다. 어쩌면 가난한 하층의 민중들은 분노할 힘도 상실하고 있었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북왕국으로 가서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셨다.
  우선 아모스는 북왕국의 지배계급들이 “여름별장”과 “겨울별장”을 두고 “상아침대”에 누워 자면서 송아지 고기로 배를 채우고 비싼 포도주로 향락을 즐기고 있을때, 가난한 민중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버림받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신발 한 켤레 값에 노예로 팔려가는 가난한 자들의 삶을 제시하면서 경제정의, 사회정의를 소리 높여 외쳤다. 더욱 아모스로 하여금 분노케 한 것은 그들의 제사의식이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회적 약자의 상징인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추수법에는 절대로 곡식이나 과일을 다 수확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약자들이 와서 이삭을 줍고 남은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도록 조금씩 남겨 두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회의 배려이다. 그런데 북왕국의 부자들은 성서의 정신을 무시하고 전혀 배려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많은 제물로 제의를 드렸다. 이 제의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보자.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
     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스5:21-24)

  결국 아모스는 당시 백성들과 오늘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사회,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예배는 떠드는 소리, 소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한경쟁 속에서 양산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도 무수히 생기고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는 사회,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는 교회와 성도들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 약자가 있음을 주목하자. 그들을 사랑으로 배려하는 모습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풍요 속에 빈곤한 자”를 찾아 관심과 배려로 힘이 되라는 것이 아모스의 메시지이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