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이집트와 남왕국, 메소포타미아와 북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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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77. 이집트와 남왕국, 메소포타미아와 북왕국 고대 근동 지역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이다. 고대 근동세계에서 쌍벽을 이루었던 이 두 제국은 각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태동시켰다. 여러 면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는 두 제국의 문화는 이웃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남왕국과 북왕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남왕국은 남쪽의 이집트 영향을 받았고, 북왕국은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상이한 두 문화가 남왕국과 북왕국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결과도 판이하게 달랐다. 이제 두 문화의 특징과 각기 남북왕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기원전 4,500년경부터 태동되기 시작했던 이집트 문화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면, “두 강사이”라는 의미를 가진 메소포타미아 문화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말그대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인류역사에 공헌하였다. 그러면 이 두 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로, 홍수에 대한 시각이 정반대였다. 즉 홍수로 인한 강의 범람을 이집트에서는 신의 축복으로 믿었으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신의 저주”로 이해했다. 이유는 이집트에서의 홍수로 인한 범람은 점차적이고 예측 가능했으며, 또한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풍년을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홍수는 이집트인들에게는 신의 축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형성했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급류가 강하며 범람의 시기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일어나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로인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홍수를 신의 저주로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로, 성격에 있어서 이집트인들은 낙천적인데 비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염세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가져다 주는 축복으로 삶 자체가 낙천적이고 풍요로웠지만,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불안한 자연현상이 신들의 비이성적이고 포학함과 결부되어 나타났다고 보고, 불안함과 염세적인 사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로, 왕권의 개념에 있어서도 이집트에서는 바로가 곧 신으로 믿어졌으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은 신의 대변자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이집트에서는 쿠테타가 없는 반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빈번한 쿠테타가 발발하였다. 넷째로, 이집트인들의 낙천적인 성품과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염세적인 성품은 그들의 내세관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즉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현세와 꼭 같이 태평한 생활을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죽은 자는 진흙과 먼지를 먹고 더러운 물을 마시며 사는 가련한 신세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고대 세계의 두 제국의 문화는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이한 두 문화가 남왕국과 북왕국에 각각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가장 큰 영향은 정치적인데서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던 남왕국 유다는 세바나 압살롬의 반란을 제외하고는 쿠테타가 없이 다윗왕조가 세습되었다. 이것은 왕을 신으로 믿는 이집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남왕국 백성들은 다윗왕조를 감히 전복하려는 기도를 애시당초 꿈도 꾸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북왕국은 어떠했는가? 북왕국은 약 200년의 역사 속에서 무려 19명의 왕이 등장하였다. 10년에 한 번꼴로 왕이 바뀌었는데, 주로 쿠테타로 왕조가 전복된 경우이다. 특히 당시 시리아가 벤하닷 1세와 2세, 그리고 하사엘까지 3대가 80년을 통치하는 동안 북왕국은 무려 9명의 왕들이 교체되었다. 이것은 왕을 신으로 보지 않는 메소포타미아의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해석은 정치적인 것으로 성서의 해석과 다를 수 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다윗왕조의 세습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네 나라와 네 위가 영원할 것이라”(삼하7:16)는 하나님의 약속이 남왕국의 다윗왕조를 보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왕국은 예언자들, 특히 역대기 사가에 의하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이고 왕조이다. 따라서 북왕국의 왕조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정변이 잦았고, 역사도 짧았던 것이다. 남북왕조의 정치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물론 역사적인 의미와 성서적인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즉 구약성서는 남북왕국의 상황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 연결해서 보도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성서의 배경이 되는 당시 고대 근동의 상황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은 성서 본문을 연구하는데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