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축복의 자리에서 저주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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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72. 축복의 자리에서 저주의 자리로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샀다가 형 에서의 노여움으로 외가가 있는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도피 길에 오른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받고, 새로운 힘을 얻어 자기의 길을 갈 수 있었다. 후에 야곱은 하란의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나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입었던 벧엘에 올라가서 은혜를 잊지 말고 상기하라는 하나님의 의도이다. 여기까지 보면 벧엘이라는 곳은 축복의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벧엘이 이제는 저주의 자리로 화하는 사건이 있다. 북왕국의 창건자인 여로보암이 예루살렘 제의를 거부하고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고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때부터 벧엘은 축복의 장소가 아니라, 거기서 예배드리면 저주받는 장소로 바뀌었다. 저주의 장소가 된 벧엘 이야기가 열왕기상 13장에 나온다.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은 유다의 어떤 하나님의 사람에게 야웨는 북왕국의 벧엘로 가서 예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도착했을 때 마침 여로보암이 벧엘의 단에서 분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게 “벧엘 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재가 쏟아질 것이며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이 저주를 들은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여로보암의 손이 마비되었다. 고쳐 달라는 왕의 요청에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하여 그의 손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여로보암이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의 집으로 초청하였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정중히 사양하였다. 그런데 벧엘에는 한 늙은 선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다 고하였다. 한편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남쪽 유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말을 달려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정중히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였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그러면서 “야웨 하나님이 자신을 벧엘로 보내실 때 벧엘에서는 누구의 집에도 들어가서는 안되며, 누구의 대접도 받아서는 안된다. 이것을 어기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도 전했다. 그러자 늙은 선지자는 “나도 당신과 같은 선지자입니다. 야웨께서 나에게 당신을 집으로 초청하여 대접하라”고 했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런데 성서 기자는 늙은 선지자의 말은 거짓이라고 밝히고 있다(왕상13:18). 즉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나도 당신과 같은 선지자라는 말에 속은 하나님의 사람이 그를 따라가서 음식을 먹는 순간, 야웨 하나님의 말씀이 그 늙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했다. “내가 너더러 벧엘에서는 떡도 물도 마시지 말고 누구의 접대도 받지 말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 오라고 했는데, 네가 이것을 어겼으니 곧 죽을 것이라”는 음성이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은 접대를 받고 돌아가다가 길에서 사자에게 찢겨 죽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준다. 첫째로, 축복의 자리였던 벧엘이 이제는 저주의 자리로 바꼈다. 아무리 축복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리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언제든지 저주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둘째로,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한데 대한 분풀이로 장래가 촉망되는 하나님의 사람을 사지(死地)로 유인했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람은 잠깐 방심하고 긴장을 늦추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사람의 말이 합리적이더라도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될 수 없다는 것을 잠시 망각한 결과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우리 모두 상기하자! 벧엘이 주는 신앙적인 교훈을. 이 교훈을 기억하고 방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진정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