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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솔로몬의 숙청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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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68. 솔로몬의 숙청작업

  역대기 사가는 솔로몬을 “평화의 사람”(대상22:9)이라고 말한다. 솔로몬이라는 이름도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םלשׁ)에서 유래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대로 솔로몬은 과연 평화의 사람이었을까? 사실 아버지 다윗과는 달리 그는 전쟁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평화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정치에 있어서 솔로몬을 평가한다면 결코 “평화의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햐면 숙청작업, 즉 정치보복을 사정없이 단행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정상적으로 왕위계승이 되었다면 결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다. 그의 위에는 최소한 여섯 명의 형들이 있었고(대상3:1-5), 무엇보다 솔로몬은 밧세바와 다윗과의 불륜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아들 중 암논과 압살롬은 일찍 죽고, 그 다음 서열인 아도니야가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아도니야는 지금까지 한번도 아버지를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성경이 기록할만큼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법적으로 왕위계승의 일순위였던 아도니야가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된다. 아도니야는 군사령관인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원으로 에느로겔 샘 곁에서 스스로 왕임을 선포하고 나섰다(왕상1:5-10). 그러자 솔로몬도 예언자 나단과 또 한사람의 대제사장인 사독, 용병대장 브나야와 의기투합하여 밧세바로 하여금 다윗을 설득하여 솔로몬이 후계자라는 승낙을 얻어낸다(왕상1:11-37). 이렇게 하여 왕자의 난은 솔로몬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이 숙청작업, 즉 정치보복을 단행한다. 왕자의 난에서 패배한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통해 다윗에게 수종들었던 아비삭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솔로몬에게 요청한다. 일언지하에 그의 청을 거절한 솔로몬은 오히려 이 일로 아도니야를 죽이고 만다. 구약신학자인 피웰(Fewell)과 건(Gunn)은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는 아도니야의 요구에 대하여 솔로몬은 무서운 정치적인 음모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비삭은 항상 다윗의 곁에서 시중들었던 여인이다. 따라서 왕위계승권을 놓고 밧세바와 다윗이 흥정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았다는 것이다.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했고, 또한 지혜로운 솔로몬은 그의 계략을 간파하고 처형했다는 것이다.
  어쨓든 솔로몬은 그의 정적인 아도니야를 처형했다. 다음으로는 대제사장 아비아달이다. 사실 다윗시대부터 대제사장은 아비아달과 사독,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아도니야 편에 섰던 아비아달은 대제사장권을 박탈하고 고향인 아나돗으로 추방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권은 쌍두체제가 무너지고 사독이 전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 숙청대상자는 군사령관인 요압이다. 아도니야의 죽음과 아비아달의 파면소식을 들은 요압은 주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뿔을 잡았다. 이 소식을 들은 솔로몬은 요압을 쳐 죽이라고 브나야에게 명령한다. 요압이 제단뿔을 부여 잡은 상태에서 버티자 결국 그 자리에서 요압을 죽이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은 자신의 반대파들을 모두 숙청 혹은 추방하고, 대신 자신의 신복들로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도 용서한 것에 비하면, 솔로몬은 아버지와 같은 이해와 관용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보인다. 아버지 덕분에 전쟁은 하지 않았지만 국내정치에 있어서는 무서운 보복과 숙청을 단행했던 인물이다. 평화의 왕이라는 성서기자의 평가는 좀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윗-솔로몬을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하는 역대기사가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평가이겠지만, 그의 정치행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부적합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