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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다윗은 겁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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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66. 다윗은 겁장이였다(?)

  사무엘상 4장에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야기가 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해 아벡에 진을 치자, 이스라엘도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으나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군사 4천명을 잃었다. 패전의 아픔을 정리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제2차 복수전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로에 있었던 법궤를 모셔와 선두에 세우고 나갔다. 그러나 2차 전투에서도 이스라엘의 보병 3만명이 전사하는 쓰라린 패배를 맛본 동시에 법궤도 탈취당하고 말았다. 
  한편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다 법궤를 보관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다곤신이 법궤 앞에 쓰러져 얼굴을 땅에 묻고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신을 다시 일으켜 제 자리에 세웠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더 처참하게도 다곤신의 머리는 전날처럼 법궤 앞에 얼굴을 박고 있었으며, 다리와 두 팔과 몸통은 다 부러져서 따로 나뒹굴었다. 다곤신이 처참하게 당한 현장을 확인한 블레셋의 지도자들이 이 법궤를 다시 돌려 보내기로 하였다. 
  블레셋에 7개월 동안 머물렀던 법궤는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모셔졌다.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져 있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아비나답의 두 아들인 웃사와 아히요가 운반을 지휘하였다. 그런데 법궤를 실은 소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뛰자 법궤가 떨어질려고 하였다. 이때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잡았는데, 그 순간 하나님의 진노로 웃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겁에 질려 다윗성으로 법궤를 운반하려던 계획을 취소하였다.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 자기의 집에서 석 달 동안 돌보았다. 석 달이 지난 후에 다윗이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운반하기로 했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무서워서 법궤를 거부했던 다윗이 왜 지금은 다시 가져가기로 마음을 먹었을까?라고 하는 문제다. 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두 개의 본문은 성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신명기 사가가 전하는 사무엘하 6장 12절의 기록을 보자. “누군가가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에 복을 내려 주셨다는 소식을 다윗왕에게 전하였다. 그리하여 다윗은 기쁜 마음으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궤를 옮길 때에 큰 축제를 벌였다.” 이 본문에 의하면 다윗은 처음에는 웃사가 죽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다윗성으로 가지고 가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석 달 동안 법궤를 모셨던 오벧에돔이 큰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운반하려고 한다. 복을 받았다는 소식에 자기도 복을 받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위의 본문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역대기 사가의 기록인 역대상 15장 25-26절에는 조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즉 역대기 사가는 자신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위의 본문의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주님의 언약궤를 옮겨 오려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로 갔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언약궤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도우셨으므로 그들이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제물로 잡아서 바쳤다.” 평행본문인 사무엘서와 다른 점은 오벧에돔이 복을 받았다는 것과, 그의 복받은 소식을 들은 후 법궤를 옮기려고 했던 이야기들이 생략되어 있다.
  신명기 역사서를 참고로 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했던 역대기 사가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생략했을까? 역대기 사가가 이스라엘 역사서를 새롭게 쓰던 기원전 5세기는 다윗을 아주 경건한 왕으로 이스라엘의 영웅화 작업을 추진하던 때였다. 그런 경건하고 영웅인 다윗이 거부했던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는 것을 보고 다윗성으로 옮겼다고 한다면, 이는 정당치 못한 행동이며, 상당히 이기적인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 즉 경건한 영웅의 인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기에 생략했던 것이다.  
  다윗의 행위에 관해 변경을 시도했던 역대기 사가에게서 우리는 배울 것이 있다. 실의와 고뇌에 찬 백성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려고 한 점이다. 국가는 백성들에게, 교회는 성도들에게 희망을 준다면 이 사회와 백성들은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