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약속의 땅을 빼앗은 블레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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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63. 약속의 땅을 빼앗은 블레셋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정착한 얼마 뒤인 기원전 13세기 후반에 가나안의 남부 해안지역에는 일단의 해양족(Sea People)이 상륙하였다. 이 해양족은 크레타섬을 중심으로한 에게해(Aegean Sea) 지역으로부터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와 가나안의 남부 해안지역에 정착하였다. 해양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았던 선민의 땅을 빼앗아 새롭게 둥지를 틀었던 것이다. 이 무리들을 구약성서는 “블레셋”(Philistines)이라고 부른다. 이집트인들은 자기네 땅을 침범하려다 격퇴당한 이들을 “바다의 민족”이라고도 불렀다. 한편 가나안의 남부지역에 정착한 블레셋은 아스돗(Ashdod), 아스켈론(Ashkelon), 가사(Gaza), 에그론(Eglon), 갓(Gath) 등, 다섯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그들의 국가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가나안의 남부지역에 거점을 확보한 블레셋은 점차 가나안의 내부로 침투하여 세력확장을 꾀하면서 약 50여년 전에 미리 정착해 있던 이스라엘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양자대결에서 이스라엘은 대부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이 청동기 시대(Bronze Age)에 머물러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철기 시대(Iron Age)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블레셋인들은 가나안에서 철기시대의 문을 연 사람들이다. 기본적인 성품이 호전적이었던 이들은 철기를 이용해서 칼과 창을 만들고 철병거까지 생산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는 무적이었던 셈이다. 사무엘상 13장 19-23절은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전해주고 있다. 타고난 호전성과 우수한 무기로 무장했던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이스라엘의 모든 철공을 없애고 제철생산을 독점하였다. 이스라엘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기구인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만들려고 해도 블레셋으로 가야만 했을 정도로 철이 귀한 시대였다. 이스라엘은 당시 전쟁중에도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외에는 칼이나 창을 든 자가 없었다는 성서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벡전투가 벌어졌다(삼상 4장). 1차에서 패한 이스라엘이 실로에 있었던 법궤를 옮겨와서 2차 전쟁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법궤까지 탈취당하는 처참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2차에 걸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우선 신정체제인 지파동맹체제가 무너지고 왕정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왕정이었던 블레셋에 연패하면서 이스라엘은 그 원인을 사사시대의 산물인 지파동맹체제에서 찾았다. 따라서 블레셋이나 주위 열강을 이기기 위해서는 왕정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정에 대한 사무엘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왕정체제를 수용하고 말았다. 다음으로는 경제적으로 블레셋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블레셋이 가나안의 모든 제철을 독점한데 기인하고 있다. 농기구 하나까지 다 블레셋에 가서 구해야 하는 관계로 이스라엘의 경제는 낙후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블레셋의 등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합당한 신정체제를 버리고 왕정체제를 도입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한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퇴보를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가나안의 이런 정치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신앙적인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인 아브라함때부터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선민의 땅을 그들은 약속대로 받았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방민족이 입성해서 마치 주인처럼 선민의 땅을 유린할 수 있단 말인가? 선민들은 왜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는가? 축복의 땅에서 축복받을 일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사시대로부터 사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선민다운 모습이 없었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블레셋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이유이다. 이 현상은 다윗시대에 이르러 반전되었다. 선민다운 모습으로 축복받을 신앙과 삶을 살았던 다윗에 의해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제압되었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장소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세상의 악한 것들로부터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축복받을 일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의 자리는 축복의 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