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사울을 재평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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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61. 사울을 재평가 합시다 사람들은 역사란 승자들의 기록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역사기록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신명기 역사서와 역대기 역사서에는 패자인 사울은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해, 승자인 다윗은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두 인물의 비교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례로 사울은 악령에 시달리면서 우울증세와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는 불완전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으나 다윗은 야웨의 영으로 충만하여 오히려 사울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개선하는 순간에 불렀다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는 군중들의 찬사를 통해서 사울은 무능한 인물임에 비해 다윗은 유능한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울은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무장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죽이지 않는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엔돌에 있는 무당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결국 사울은 야웨를 배반한 왕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야웨께 버림받은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고 이스보셋이 왕위에 올랐으나 자중지란으로 암살당하면서 왕권은 다윗가문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사실 사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신명기 역사서보다 역대기 역사서가 더 노골적이다. 이를테면 사울의 죽음 이야기를 보면, 신명기 역사서인 사무엘상 31장 6절에는 “그 날 사울과 세 아들과 무기당번 병사가 이렇게 죽었다. 사울의 부하도 그날 다 함께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상 10장 6절에는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의 온 가족이 함께 죽었다”고 고쳐서 기록했다. 역대기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신명기 역사서를 참고로 해서 기록한 역사책이다. 역대기사가가 사울과 그의 온 가족이 다 죽었다고 기록을 변조함으로써 사울 가문에서는 더 이상 왕권계승자가 없기 때문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왕권찬탈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임을 보여 주려고 했다. 또한 역대기사가는 신명기 역사서에는 없는 이야기를 첨가하면서까지 사울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울이 주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었다. 그는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점장이와 상의하여 점장이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주께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맡기셨다”(역대상10:13-14)고 그전에 없었던 이야기를 첨가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은 성경의 기록임으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난해한 부분이 있다. 왜 하나님께서 용서에 차별을 두셨는가 하는 문제다. 가령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사건이나 인구조사를 한 후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러나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진멸법을 어긴 후, 사무엘의 꾸중을 듣고 즉시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였다. 그런데도 성경 어디에서도 사울이 용서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일국의 왕인 사울이 사무엘의 옷이 찢어지도록 붙잡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는데도 말이다. 왜 다윗은 용서함으로써 새 출발의 기회를 주셨으면서도 사울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왕권박탈이라는 초강수의 형벌을 주셨을까하는 문제다. 용서에도 차별이 있다는 말인가? 이 문제는 역사가의 관점을 이해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역대기사가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으로 보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역사기록에서는 다윗에 대한 모순이나 부정적인 것은 모조리 삭제하거나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다윗의 왕위계승에도 정통성을 부여해야 하고 찬탈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왕위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울과 다윗을 대조시키면서 사울은 부정적으로 다윗은 긍정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울가문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밝힘으로써 사울가에는 더 이상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다윗이 자연스럽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역대기의 기록과는 달리 사울가문에는 왕위에 오를 수 있는 후손이 분명히 있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울을 희생양으로 만든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서를 기록한 역대기사가이다. 승자인 다윗의 훌륭한 모습들만 나열되어 있었지, 비록 패자이지만 사울의 훌륭한 모습들은 적어도 역대기사가의 기록에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역대기사가는 다윗이라는 한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울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을 재평가하는 것도 성서를 이해하는데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