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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불법적인 약속도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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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57. 불법적인 약속도 약속이다

  여호수아 9-10장은 이스라엘과 기브온 사람들과의 평화조약 체결에 관한 이야기을 보도하고 있다. 기브온은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과 함께 히위족속의 성읍이다. 예루살렘 북서쪽 8km에 위치하고 있는 기브온은 히위족속의 성읍 중에서 가장 크고 강하며, 왕도이기도 하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와 아이를 차례로 점령하면서 가나안 땅 심장부를 향해 접근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기브온 사람들이 생존의 방법으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체결을 시도했다. 이들은 멀리서 왔다는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낡은 옷을 입고, 곰팡이난 떡과 헤어진 가죽부대에 물을 담고, 다 떨어진 신발을 신었다. 누가 보더라도 오랜 여행자로 착각하도록 위장한 것이다. 멀리서 온 관계로 새 옷을 입고 출발했는데 이제는 다 낡았고, 떡도 곰팡이가 났고, 가죽부대도 헤어졌고, 신발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동정심을 사기에 충분한 아이디어였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을 믿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가나안 전쟁 중에 기브온은 먼 지방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데 거주하는 거민임이 금방 들통났다. 그들의 위장술에 분노도 하고 후회도 했으나 이미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거짓에 의한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조약이었으나 그 효력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과 기브온이 평화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가나안의 다섯 왕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연합군을 형성하여 기브온에 대한 보복공격을 감행했다. 여기에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헤브론 왕 호합, 야르뭇 왕 비람, 라기스 왕 야비아, 에글론 왕 드빌이 합세했다. 이들 연합군의 침략을 받은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에 진치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여호수아는 평화조약에 따라 군대를 파견하여 가나안의 다섯 왕들을 패퇴시켰다. 비록 그들의 위장술에 속아 화친을 맺었으나 한번 한 약속은 약속이기에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약속을 중히 여기는 여호수아의 모습이다. 
  한편 이스라엘과 기브온이 맺었던 평화조약을 우습게 여기고 파기시켰다가 큰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후대에 와서 발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사울이다. 사무엘하  21장에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일 때문에 다윗시대에 3년 간이나 큰 가뭄과 기근이 들었다. 결국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사울 가문의 사람 7명을 보복의 대상으로 내어 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 7명의 사람들을 산 위에 목메어 달아 죽임으로써 재앙이 종결되었다.
  사실 사울이 저지른 죄값을 왜 다윗시대에 와서 받느냐는 신학적인 의문도 있다. 그러나 비록 왕조가 사울 가문에서 다윗 가문으로 옮겨졌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보실때에는 두 가문 모두가 하나의 이스라엘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사울의 범죄에 대한 죄값이 다윗시대에 와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과 기브온 간에 맺어진 평화조약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과실이 있다. 우선 기브온은 위장술로 이스라엘을 명백하게 속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백성의 지도자들이 관례를 깨고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기브온 사람들의 말과 모습을 보고 덮석 조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하나님께 물어 보았더라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과실은 신앙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상법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기브온의 죄만 물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이 이 조약을 원인무효라고 파기선언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조약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조약을 준수하도록 하셨다. 기브온을 학살한 사울의 죄값을 다윗시대에 치르게 함으로서 약속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불법적인 약속도 약속이라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그래서 성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약속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타인과의 약속도 손해가 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기브온과의 약속은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이기에 그렇다. 그대신 모든 약속은 신중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없나? 손해가 되더라도 지켜야 한다. 애당초 불법적인 약속이라도 말이다. 이스라엘과 기브온과의 평화조약은 이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악법을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지키지 말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성서적인 해답을 물어 온다면, 이스라엘과 기브온과의 평화조약이 대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