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족장종교와 모세종교

50. 족장종교와 모세종교

  창세기 12장-50장까지를 구약신학에서는 “족장사”라고 한다. 족장사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네 명의 이야기를 일컫는 말이다. 족장들이 살았던 시대는 기원전 20세기로부터 17세기까지로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고대 근동의 문헌들(마리문서, 갑바도기아문서, 누지문서, 에블라문서, 이집트 중왕조시대의 주문문서 등)과 족장사에 나타난 이야기들이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족장종교라고 하면 이들 네 명의 족장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교적인 모습이고, 모세종교라고 함은 모세의 등장과 함께 율법을 통해 계시된 이스라엘의 종교를 의미한다. 그런데 족장종교와 모세종교는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일까?
  첫째로, 족장종교에서는 다신교적인 색채가 있는 반면, 모세종교에서는 유일신 사상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족장종교에서 다신교적인 요소는 신 이름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들면 엘 샤다이(El Shaddai), 엘 엘룐(El Elyon), 엘 올람(El Olam), 엘 로이(El Roi) 등이다. 이스라엘 역사연구의 권위자인 올브라이트(Albright)는 이러한 이름들은 서부- 셈계통의 신들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야곱이 하란에서 귀향할 때 아내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왔다. 이 드라빔도 역시 가나안의 종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이 현상들은 족장종교에 다신교적인 요소가 기미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종교에서는 다신교적인 요소가 배제되고 유일신 사상이 자리잡게 된다. 즉 족장종교에서는 제1계명이 배제되고 있는데 비해, 모세종교에서는 제1계명의 요소가 뚜렷이 지켜지고 있다.
  둘째로, 족장종교에서는 가나안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나 모세종교에서는 가나안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제사장 멜기세덱은 가나안의 제사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서로 축복을 주고 받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모시고 왔던 엘 신과 가나안의 주신인 엘의 이름이 동일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여하튼 족장종교에는 가나안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모세종교에 이르러서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함으로서 가나안 종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가나안에 대한 저주이야기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태동했던 야웨문서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가나안을 저주했다는 것은 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아나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의 문화와 종교를 거부하고 저주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셋째로, 족장종교에서는 제의장소의 다양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비해, 모세종교에서는 제의장소의 단일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모세 이후의 종교에서는 예루살렘으로의 제의장소가 단일화되고 있다. 지방의 모든 산당은 제거의 대상이었다. 산당제거는 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넷째로, 족장종교에서는 도덕성의 강조가 별로 없으나 모세종교에서는 도덕성의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거짓말이나 야곱의 거짓은 분명히 모세종교에서는 커다란 죄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으로 벌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모세종교에서는 십계명이 적용되면서 엄격한 도덕적인 규율을 요구하고 있다. 시내산의 율법수여는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일찍이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기초로 해서 역사비평적 연구방법이라는 새로운 성서해석방법론을 창안했던 벨하우젠(J, Wellhausen)은 모든 종교사상은 진화한다고 했다. 즉 초기의 하등종교에서 발전을 거듭하여 고등종교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견해를 완전하게 수용할 수는 없으나 족장종교나 모세종교를 비교해 보면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고도 볼 수 있다. 원시성을 내포하고 있던 족장종교가 모세를 거치면서 불순물과 찌꺼기가 제거되고 순수함만이 나타나고 있는데서 유추해 볼수 있다. 
  종교사상의 진화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도 하등신앙에서 고등신앙으로의 진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