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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2의 가데스바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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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48. 제2의 가데스바네아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이 지나서야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거리상으로는 2-3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그들은 40년이나 걸렸다. 그 원인은 가데스바네아의 불신행위였다. 열 사람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었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의 불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다. 이런 불신앙적 태도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만들었다.
  한편 제2의 가데스바네아 사건이 될 뻔한 이야기가 민수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요단강 동편의 모압평지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을 위한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서로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어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은 것이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의 무리한 요구였다. 목축을 주업으로 했던 이들이 요단 동편 땅을 보니 목초지가 광활하고 풍성했다. 더욱이 가나안 정복가능성도 희박해 보이는 상황인지라 생명의 안전과 삶의 근거지로는 손색이 없는 장소였다. 
  모든 손익계산을 끝낸 이들 지파의 대표자들이 모세에게 목초지가 풍성한 요단 동편 땅을 자신들에게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모세의 불같은 진노가 떨어졌다. 모세는 “너희 형제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가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여기 편히 있을려고 하느냐? 너희들의 행위는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라”며 책망했다.
  모세는 그들의 불신앙적인 동기를 가데스바네아 사건을 예로들어 질타했다. 가데스바네아에서도 가나안의 정복불가능성을 제기하고 불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는데, 여기서 또다시 그 비극을 되풀이 하려느냐는 것이다. 
  모세의 진노에 이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세가지 절충안을 제시했다. 첫째 가나안 정복전쟁시에 맨 선두에 서서 싸울 것이며, 둘째 가나안 정복이 종결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셋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았으니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은 얻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절충안에 모세가 동의함으로써 제2의 가데스바네아 사건으로 비화될뻔 했던 일이 원만히 수습되었다. 여호수아 22장에서는 이들 지파들이 약속대로 전쟁을 다 마치고 돌아갔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두 지파 반의 요구사항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우선 가데스바네아 비극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에 대한 불신이 가데스바네아의 비극이었는데, 요단 동편 땅에서도 이들 지파들은 가나안 정복을 불신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복불가능한 전쟁에서 헛되게 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이런 무리한 요구의 배경이었다. 둘째 이들은 약속의 땅을 경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약속한 땅은 요단 동편이 아니라 서편, 즉 가나안 땅이다. 그런데도 경제적인 가치와 육안으로 보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 땅에 정착하려고 했다. 셋째는 자기들의 이기심으로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다. 
  정탐꾼들의 보고대로 가나안 원주민들은 장대하고 성은 요새화되어 있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도 정복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지역이다. 무리들 중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지파 반의 요구는 공동체의 심각한 와해를 불러 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의 행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믿음, 내 교회만을 위하는 개교회주의, 이것은 분명히 타파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의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일정부분 마귀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용기로 하나된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 지파처럼 이기적인 발상으로는 세상을 향해 갈 수도 없고, 마귀와의 영적전쟁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의 평화와 사기진작에 힘써야 한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들은 그것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