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교회
영혼의 양식 예안 활동 구약성서의 세계로

41. 성서 독자들이여! 피하지 말라

목록 가기

날짜 : 2019-12-11

41. 성서독자들이여! 피하지 말라

  성서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지 않고 피해가고 싶은 성서본문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대게는 레위기에 있는 제사제도와 그 규례들, 그리고 역대상 1-9장까지에 나열되어 있는 족보이야기이다. 사실 이 본문들은 독자들에게 지루함과 피하고 싶은 충동을 준다. 그렇다면 과연 이 본문들은 성서독자들에게 아무런 신학적인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단지 지루함만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성서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 성서본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즉 제사제도나 족보이야기가 어떤 시대에, 왜 태동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한다면 오히려 큰 은혜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본문이다. 그러면 그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레위기의 제사제도부터 보자. 오경문서설에 의하면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P문서, 즉 제사문서에 속하는 본문이다. 제사장 계열의 신학자들이 기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P문서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태동했다는 것이 구약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바벨론 포로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이스라엘의 엘리트들을 정복지의 반란방지 명목으로 다 잡아갔던 시대이다. 다니엘서가 보여주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사자굴이나 풀무불에 던져지는 죽음의 시대이다. 어디 그 뿐인가? 에스겔서에는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에스겔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버리고 마르둑(Marduk) 신을 섬기자고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을 저버리고 우리를 망하게 했다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바벨론의 마르둑 신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길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바벨론 포로시대는 외적으로는 바벨론의 박해와 내적으로는 야웨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겹치면서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구약종교의 핵심은 제사다. 그런데 제사드리는 방법을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가 하면, 관심조차도 두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꺼져가는 야웨종교의 불씨를 지펴보려고 몸부림친 결실이 제사제도이다. 누구보다 신앙의 위기를 직감적으로 느낀 제사장 계열에서 제사규례를 문서화하고 백성들에게 주지시켰다. 제사드리는 방법을 잊지 않고 있다면 야웨종교 역시 소멸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포로지에서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야웨종교를 보존하기 위해서 제사장 계열의 신학자들이 제사규례를 정리한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의 제사제도이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서 야웨종교는 역사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족보이야기이다. 족보는 성서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어 있으나 특히 역대상 1-9장까지에 가장 길게 나열되어 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뛰어 넘어버리는 본문이다. 이런 본문을 왜 성서편집자들이 길게 수록하였을까?
  우선 족보이야기는 역대기 역사서에 속한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역대기 역사서는 포로후기에 신명기 역사서를 모델로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 역사서이다. 역대기역사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역사가들의 신학적인 의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대기 역사서는 포로후기인 기원전 5-4세기, 즉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 시대의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속국이요, 사회적으로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 시대이고, 종교적으로는 야웨신앙에 강한 회의감이 들던 시대이다. 이들은 포로지에서 부푼 꿈을 안고 귀환했으나 현실은 그들의 꿈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현상에 대한 백성들의 환멸은 종교적 도덕적인 해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자신의 의무에 싫증이 나서 병들고 약한 짐승들을 제물로 드렸고(말1:6-14), 안식일을 등한히 했으며(느13:15-22), 십일조를 잘 드리지 않아 레위인들이 생계문제로 성직을 버린 일도 생겨났다(느13:10). 야웨신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선민의식도 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역대기 역사가는 역대상 1-9장까지에 아담으로부터 다윗에 이르는이스라엘의 족보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이 족보의 특징은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과 바벨론에 의해 무너져내린 다윗왕국이 다시 재건된다는 의미이다. 백성들의 신앙적인 절망상태에서 다윗왕국의 재건을 족보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로하며, 미래의 희망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다윗왕국 재건에 대한 약속은 신약에 와서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결국 제사제도나 족보는 모두 역사의 위기와 종교적인 위기에서 태동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서 야웨종교를 보존전수하며, 한 민족의 미래를 열어가려고 하는 몸부림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시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와 신앙적인 도전을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