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힉소스족의 이집트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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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9-11-28
28. 힉소스족의 이집트 정복 기원전 18세기에 접어들어 아시아까지 세력을 뻗쳤던 대제국 이집트는 세력이 약화되면서 아시아 지역의 소수 민족들이 이집트 바로들의 지배에서 독립했다. 아시아 민족들이 이제는 오히려 이집트의 북부지역을 침투해서 세력을 연장시켜 나갔다. 따라서 이집트는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집트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기원전 1700-1580년 사이에 시리아-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델타지역을 정복한 것이 힉소스족이다. 이집트어로 “외국의 통치자들”이라는 의미인 힉소스족들은 세계 최초로 전차부대를 이용해서 전쟁을 수행한 호전적인 민족이다. 그들은 이집트를 단숨에 무력화시키고 나일강 하류의 델타지역인 아바리스에 수도를 정하고 이집트에 대한 통치를 시작했다. 고대 근동의 역사에서는 대체로 강대국이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만 공격해 왔으나 힉소스족의 경우에는 국경을 초월하여 시리아-팔레스타인 뿐만아니라 이집트까지고 원정해서 정복사업을 수행했다. 전차부대를 동원한 그들의 위력 앞에 대제국 이집트도 쉽게 와해되고 말 았다.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는 당시 이집트를 침공한 힉소스족에 대한 공포를 이렇게 적고 있다. 그가 통치할 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신은 우리에게 돌풍을 몰고 왔다. 뜻하지 않게 동방으로부터 이름도 알 수 없는 침입자들이 자신만만하게 우리의 땅으로 쳐들어 온 것이다. 그들의 주력부대는 어떠한 반격도 받지 않고 쉽사리 침입해 들어왔다. 그들은 이땅의 통치자들을 물리치고 우리의 도시를 무자비하게 불태우고 신들의 신전을 부수고 토착민들을 잔인하게 다루었다. 또한 마네토는 힉소스족이 멤피스에서 왕을 세우고 텔타지역의 아바리스에 튼튼한 요세를 세웠다고 보고하고 있다. 마네토의 보고를 종합하면 힉소스족의 침입 앞에 이집트는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당시의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이집트의 세력이 약화된데도 원인이 있지만 세계 최초의 전차부대를 동원한 힉소스족의 전투력이 탁월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면 힉소스족과 이스라엘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구약신학자들은 요셉이 이집트의 국무총리로 등용된 것은 힉소스족의 바로에 의해서이며, 야곱가족의 이집트 이주도 힉소스족의 통치시기라는데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힉소스족은 서부 셈족에 속한 민족인데 같은 셈족으로 아시아계인 요셉을 등용한다는 것은 순리일 수도 있다. 실제로 힉소스족의 통치시대에 아시아계 사람들이 고위관직에 많이 등용되었다는 기록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요셉은 같은 아시아계인 힉소스족의 바로에 의해 국무총리로 등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힉소스족의 이집트 통치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100여년이 지난 후 이집트 18왕조의 창시자인 아모시스(Amosis)에 의해 북방으로 추방되었다. 당시 근동의 최강국 이집트의 전성시대가 동쪽 바다에서 태양이 떠오르듯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징조였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1장 8절은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통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수한 고난과 압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요셉을 모르는 바로는 힉소스족을 추방시키고 이집트 제국을 재건한 18왕조의 바로를 가르키고 있다. 결국 힉소스족의 바로들에 의해 부귀영화를 누렸던 히브리민족은 이제 같은 셈족인 힉소스족이 추방당하고 이집트의 토착왕조가 들어서자 고통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힉소스족의 퇴각으로 히브리인들의 행복은 끝이나고, 이집트의 토착왕조가 들어서면서 불행이 시작된 셈이다. 전차부대라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혜성같이 등장해서 0한 세기 동안 고대 근동세계를 풍미했던 힉소스족도 다시 일어선 대제국 이집트의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근동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