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비정의 아버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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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9-11-20
20. 비정의 아버지일까? 성서를 읽는 독자들은 가끔씩 납득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고대 근동의 문화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의 상황에서 읽고 이해할려고 하는데 원인이 있기도 하다. 창세기 19장에 기록된 롯의 행동이 그 좋은 예 가운데 하나다. 이 본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집에 들렀던 두 명의 천사들이 오정에 점심을 먹고 롯이 거주하고 있었던 소돔을 향하여 출발해서 저녁 때에 도착했다고 한다. 사실 아브라함이 살던 헤브론에서부터 사해 남부 지역에 속한 소돔까지는 거리가 약 70km에 달한다. 이 거리를 점심먹고 출발해서 저녁 때에 당도한다는 것은 초인적인 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롯의 간청에 의하여 두 천사는 롯의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소듬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롯의 집에 투숙한 손님들을 상관하겠다는 것이다. 소돔사람들의 악행은 “상관하겠다”는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동성연애하겠다는 것이다. 4절에 보면, 이 악한 일에 소돔의 남자는 노소를 불문하고 다 모여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최소한 소돔의 모든 남자들이 다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에 소돔에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이와 연관지을 때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폭도들의 요구에 대해서 롯은 손님 대신 두 딸을 그들에게 내 줌으로서 이 위기를 타개할려고 한다. 그런데 창세기 19장 14절에 의하면 두 딸은 이미 약혼을 한 상태다. 약혼한 딸을 폭도들에게 성적인 대상으로 넘겨 준다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이나 신명기 22장 23-27절에 명시된 것처럼,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그 딸의 죽음을 의미했다. 오늘의 상황에서 본다면 롯의 행동은 비도덕적이고 비정한 아버지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을 한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관습이나 문화에 대한 선이해가 없이 구약성서에 드러난 현상만을 보고 롯을 이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당시 고대 근동세계의 문화나 가치관을 먼저 더듬어 보는 것이 롯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로, 롯의 행동은 고대 근동세계의 삶의 법칙에 따라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근동의 관습은 나그네를 철저히 보호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패역한 소돔 사람들에게는 이런 법칙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지만 롯은 끝까지 이 손님에 대한 의무를 다할려고 한다. 둘째로, 롯의 행동은 고대 근동세계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고대 근동에서는 나그네와 딸 둘 중의 하나늘 보호해야 한다면 우선 나그네를 보호해야 했던 사회다. 즉 자녀들 보다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 더 귀하게 대우받는 가치관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롯은 이 가치관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낮게 평가된 딸들의 가치관은 고대세계에서 딸들의 생명과 미래는 가족의 장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었다. 가장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한 것이다. 롯의 행동을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에서 일방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의 문화나 관습에서 본다면 롯은 나름대로 도덕적이었고, 가치관의 우선순위에 따라 순리대로 살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타향 땅에 살았으면서도 그들의 삶이 불신앙적이고 패역한 문화였기에 따르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비정의 아버지라는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리도 불신앙적인 문화요, 때때로 패역한 세속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롯처럼 정도가 아니면 따르지 않는 용기와 삶의 법칙에 충실할 수 있는 결단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라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무쌍하더라도 우리는 이 법칙에 충실하면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 답게 만드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