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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브람을 맞이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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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9-11-19

19. 아브람을 맞이하는 사람들

  창세기 14장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군사적 행동이 기록된 것과 다른 하나는 성서에서 최초로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군사적 행동의 배경과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이 흥미있게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아홉 개의 나라와 그 나라의 통치자들인 왕들이 등장하고 있다. 즉 사해 근처의 다섯 왕들인 소돔의 베라, 고모라의 비르사, 아드마의 시납, 스보임의 세메벨,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소알의 왕들이 십이년 동안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봉신으로 있었다. 그러나 13년째 되는 해에 이 다섯 왕들이 더 이상 봉신이기를 거부하고 나오자 분노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동방의 세 왕, 즉 시날의 아므라벨과 엘라살의 아리옥, 그리고 고임의 디달 왕을 규합해서 연합군으로 사해 근처의 다섯 왕들과 대결했다.
  전쟁의 결과는 사해 근처의 다섯 나라의 동맹군들이 패하면서 재물과 양식을 약탈당했고, 소돔 땅에 살았던 아브람의 조카 롯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포로로 잡혀갔다. 조카 롯이 포로로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아브람은 자신의 사병 318명을 동원해서 동방의 네 개 연합군을 추격해서 전투를 벌인 끝에 승리하고 탈취당했던 재산과 포로되었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왔다. 물론 여기에는 조카 롯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맞이하는 두 사람, 즉 살렘의 왕인 멜기세덱과 소돔 왕 베라의 반응이 흥미롭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아브람을 먼저 영접한 사람은 소돔 왕 베라였다. 그는 “샤웨 골짜기”까지 마중을 나왔는데, 사무엘하 18장 18절에 의하면 샤웨 골짜기는 예루살렘 북쪽의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소돔 왕이 아주 멀리까지 기뻐서 마중 나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아브람과 그의 군사들의 시장함을 해결하고 위로할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았을뿐더러 수고와 격려의 말, 복을 기원하는 말 한마디도 없다. 단지 아브람에게 전리품은 다 당신이 취하고 포로되었던 백성들과 군사들은 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자신이 탈취당했던 재산과 잃었던 군사들을 도로 찾아오는 아브람을 맞이하는 사람으로서는 염치가 없다.
  아브람을 영접한 또 한 사람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다. 그의 호칭은 “살렘 왕”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살렘이 제정일치의 사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동방의 네 왕들이 침입했을 때 살렘의 멜기세덱은 소돔 왕 베라와는 달리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런데도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영접하러 나오면서 떡과 포도주를 준비해 와서 군사들을 먹이고 아브람을 축복했다. 그는 신세진 것이 없으면서도 마음껏 후대했다. 그러자 아브람도 전리품의 십분 일을 보답으로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우리는 아브람을 맞이하는 두 사람에게서 이기적인 사람과 비이기적인 사람을 볼 수 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포로에서 해방된 자신의 군사들을 돌려 달라면서 선심쓰듯이 전리품은 아브람에게 다 가지라고 했다. 빈손으로 왔던 베라의 제안을 아브람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치부했다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호의는 아브람을 감동시켰고, 십분일을 드린 결과를 낳았다. 
  멜기세덱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브람을 통해서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멜기세덱처럼 하나님도 이해관계가 없으면서도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다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영접했던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영접하실 것이다. 
  그러면 이런 좋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떠해야 하나? 아브람이 감사의 보답으로 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부지런히 드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그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