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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파르"(흙)에 담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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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9-11-04

4. “아파르”(흙)에 담긴 비밀


  창조이야기는 성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의 종교들도 창조신화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근동의 종교들에서 창조신화가 태동하게 된 배경은 우주의 기원을 자신의 종교와 신에게 둠으로써 자기 종교의 위대성과 우월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고 성서와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에누마 엘리쉬”라는 바벨론의 창조신화다. 기원전 587년에 남왕국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패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들이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그들의 창조신화를 접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포로민들은 이 창조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르둑이라는 신이 실제로 창조주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잘못된 창조신앙을 바로 잡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한 창조주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창조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 태동된 것이 창세기 1장과 제2이사야의 창조이야기이다. 이제 고대 근동의 대표적인 창조신화를 몇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바벨론의 창조신화를 보면 남편인 강물의 신 압수와 부인인 바닷물의 신 티아맛이 그들의 수면과 휴식을 방해하는 자녀신들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이 비밀을 알아낸 지혜의 신 이아가 주문을 외워 압수를 잠들게 한다음 죽여버린다. 드디어 양측이 최후의 전면전을 준비하게 되는데, 남편을 잃은 티아맛이 새로운 남편 킹구를 맞아들여 전력을 보강하고, 이아 역시 그의 아들인 마르둑을 끌여 들여서 전쟁을 하게 된다. 이 대결에서 이아와 그의 아들인 마르둑이 승리하게 되었다. 젊은 신 마르둑은 티아맛의 시체를 이등분해서 한쪽으로는 하늘을 만들고 다른 한쪽으로는 땅을 만들었다. 그리고 킹구를 죽여서 그의 피와 진흙을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을 만든 이유는 마르둑 신전의 노예로 부려먹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 신화의 내용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아트라카시스 창조신화”라는 것이 있다. 이 신화의 내용은 고등한 신들은 언제나 놀고 먹으면서 저등한 신들에게는 고역을 시켰다. 고역을 견디다 못한 저등한 신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고등신들의 회의에서 저등한 신들을 고역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로 결정했다. 대신 그동안 저등한 신들이 담당했던 고역은 인간을 만들어 그들에게 지우기로 했다. 그래서 고등신들은 저등한 신들의 무리에서 반란의 주동자를 잡아 그의 피와 진흙을 섞어 인간을 만들게 되었다. 즉 인간은 고역을 담당하는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다.
  중간시대의 종교와 문화를 주도했던 그리이스의 신화에서도 제우스신의 이복동생인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 일이 있은 후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은 제우스신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그리이스 신화의 내용이다.
  이러한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에 나타난 공통점은 인간을 만든 재료가 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창조이야기와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성서도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인간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성서나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의 공통점이 바로 흙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흙이라는데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성분을 보면 확연히 다르다. 고대 근동에서는 인간을 만든 흙이 진흙이다. 그러나 성서는 히브리어로 “아파르”라는 흙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아파르라는 흙은 깨끗하게 정제된 흙을 의미한다. 이것은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흙으로써 몇번씩 정제해서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의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의 흙이 바로 히브리어로 아파르라는 흙이다.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 진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노예이지만 성서에서 아파르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창조의 면류관이다.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에 의한 인간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슬플까? 그러나 성서의 인간은 하나님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아파르, 즉 최고로 깨끗한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행복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