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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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예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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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0-02-03

Ⅲ. 예언 이야기

  “예언” 혹은 “예언자”라는 말은 한국의 교회 현장에서 많이 왜곡되고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이런 잘못된 이해는 무수한 부작용을 초래하였고, 그 폐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용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바른 신앙과 신학적인 토대 위에 안전하게 세울 수 있다. 예언이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장래에 되어진 일을 미리 알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예언이란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점장이나 무당들이 점을 쳐서 장래에 되어질 일을 알아맞히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의미이다.
  예언자라는 말의 영어 “Prophet”는 헬라어 “Prophete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Pro”라는 접두어와 “말하는 자”(Phetes)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Prophetes”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대체적 의미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둘째는 장소적 의미로 어느 특정한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셋째는 시간적 의미로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말하는 사람이다. 이 의미를 종합하면 성서의 예언자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 앞에서 미리 말하는 사람”이다. “내일 일을 미리 말하기”(foretelling)가 아니라, “앞장서서 말하기”(forthtelling)이다. 그러므로 예언자란 백성들보다 미리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달받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한편 예언자는 그 기능에 따라 또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성전에서 예언활동을 했던 성전 예언자이다. 이들은 제사장의 영향권 하에 있었기 때문에 소신있게 예언활동을 하지 못하고 제사장들과 적당히 타협하는 태도를 취했다. 둘째는 궁궐에서 예언했던 궁중 예언자인데, 이들도 왕의 그늘 아래 있었던 관계로 권력과 타협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셋째는 개인 예언자들로, 이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소신껏 예언을 할 수 있었다. 구약 성서에서 부도덕한 권력과 타락한 종교를 향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준엄하게 선포했던 자들은 대게 개인 예언자들이었다. 
  그러면 예언자들의 등장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적으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넘어가려는 시기,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고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을 때, 그리고 종교적으로 유일신 사상이 무너지고 다신교적인 신앙으로 변질될 때에 예언자들은 예외없이 등장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진보적이며, 비판성향이 강하며, 사상과 삶의 방식이 신본주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이다. 따라서 현실의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고 종교와 권력의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고 했던 제사장이나 권력자들과는 항상 마찰을 빗었다. 적어도 개인 예언자들인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예언자들은 그랬다. 이런 개인 예언자들이 오늘 한국교회를 바라본다면 어떤 메시지를 선포할까?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